태그 : 갑자기해글러가그리워지는토요일
2009/07/04   관심度 [10]
관심度

아는 사람이랑 술을 먹는데,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난 원래 낯을 무지막지하게 가리는 편이라, 굳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초면인 사람한테 먼저 말 걸고 이런 게 좀 미숙하다.
예전보단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뭐 암튼 기본적으로 그런데..

아는 사람이 갑자기 일이 생겨 자리를 뜨는 통에 모르는 사람이랑 둘만 남았다.

꽤 뻘쭘해졌는데 갑자기 일어나기도 그래서 술 시켜놓은 거나 먹고 가죠 그러면서 계속 먹는데.

그냥 시덥잖은 얘기 하다가 그 사람이 갑자기 복싱을 좋아한댄다.

'와 저도 예전엔 복싱 쫌 좋아했는데.'
'전 지금도 좋아해요.'
'요즘은 엠엠에이 쪽이 신나는데, 중계를 잘 안 해 주더라구요.'
'엠엠에이는 뭔가요?'
'믹스트마샬아츠라고 보통 이종격투기라고도 하는데, 그건 사실 좀 일본식 용어고 종합격투기죠 뭐'
'아 글쿤요'

그리 블라블라하다가, 복싱 얘기를 할라치는데, 요즘 복싱 쪽은 아예 관심을 끊고 살다 보니 정말 뭐 할 얘기가 없는 거다.-_-a

그래 조심스레 메이웨더 주니어 네타 드립.

'메이웨더는 곧 복귀한다는 것 같던데, 돈 떨어진 걸라나요? ㅎㅎ'
'메이웨더요? 그게 누구죠?'

복싱 좋아한다며....-_-;;;

'요즘은 중량급은 거의 지고, 되려 슈퍼페더부터, 웰터, 라이트가 전성기인 것 같아요. 파이트머니도 중량급보다 더 많고.'
'아 근데 저는 헤비급 좋아해요.'
'헤비급은 전 요즘은 정말 모르겠네요? 아직도 발루에프가 언터처블인가요?'
'발루에프요? 그게 누구죠?'

복싱 좋아한다며....-_-;;;

'매니 파퀴아오랑 리키 해튼전은 보셨어요? 파퀴아오 역시 죽이던데요.'
'파...누구요? 리키 해튼은 또 누구죠?'

복싱 좋아한다며....-_-;;;

이런 식으로 겁나 영양가 없는 대화 이어지다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럼 어떤 복서 좋아하시냐니깐 무슨 타이슨, 홀리필드 주워섬기고 앉아 있다. 완전 나 뭐 이거 어떡해야 돼.

여기서 분위기 제대로 골로 보낼라믄, 아 클래시컬 복서 좋아하시나 봐요 하면서 밑밥 던져 놓고 막 해글러, 무가비, 레너드, 헌즈, 스핑크스 콤보러쉬(이 때는 정말 복싱 좋아할 때라 2시간은 떠들 수 있음. 나 해글러 광빠) 들어가면 바로 남극행 익스프레스 타는 건데, 차마 그러고 싶진 않아서 그냥 어색한대로 조용히 술빨다 쫑.


타인의 '좋아한다'는 게 내 지극히 미약한 '관심'보다도 그 농도가 심히 떨어질 수 있음을 새삼 느꼈고,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할 때는 코어한 주제 풀지 말자고 다시금 결심.

..아니 근데 파퀴아오, 발루에프, 해튼, 메이웨더가 솔직히 무슨 코어한 복서들도 아니고 복싱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거 아닌가. 요즘도 복싱 좋아한다며. 난 정말 복싱 관심도 없는데 지금은 진짜.

다 그렇다 치고, 매니 파퀴아오를 모르다니. 우리 엄니도 아실 텐데. 지금 복싱계의 아이콘이 파퀴아오 아니던가.-_-;

몰라도 되는 거고, 당연히 모를 수 있는 거긴 한데, 근데 그럼 '지금도 복싱 좋아한다' 이런 얘길 왜 하는지 원.


결론 : 역시 술은 아는 사람이랑 빨아야 제 맛.


P.S> 저 에피소드에서 복싱을 야구, 영화, 게임, 음악, 서적, 만화 등으로 치환해도 사실상 거의 동일한 전개.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랑 대면하게 되면, 의도적으로 얘기 안 꺼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난 점점 무뚝뚝한 사람 되고...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얼마나 말이 많은데.ㅋㅋㅋㅋ 특히 술먹으면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씨부리는 게 낙인데, 술먹고 입닥치고 있으려면 정말 힘들다.(징징)

by Lucier | 2009/07/04 11:16 | Private | 트랙백 | 덧글(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