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윅스트
- 타이틀 : 트윅스트(Twixt)
- 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개봉 : 국내 미개봉(2011년작)
- 주연 : 발 킬머
- 조연 : 엘르 패닝, 브루스 던, 벤 채플린, 안소니 푸스코, 데이빗 페이머, 엘든 이렌리치, 톰 웨이츠(나레이션)
- 러닝타임 : 88분

- 기대도 : 6
- 만족도 : 7
- 서울아트시네마

- 작년에 올리버 스톤의 최신작 새비지스(Savages, 국내 개봉 타이틀 : 파괴자들)를 보고 그야말로 참담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 시사회로 봤었는데 약주를 살짝 걸친 상태라서 구렸던 건가 싶어 며칠 후에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한 번 더 봤는데 차라리 그냥 한 번만 봤으면 덜 슬펐을 텐데 하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
- 갑자기 올리버 스톤의 함량 미달 신작 얘기는 왜 꺼내는고 하면, 프란시스 코폴라의 미개봉 신작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틀어 준다기에 참 보고 싶기는 한데 새비지스 마냥으로 구리면 올리버 스톤에게 느꼈던 실망감보다 더 크게 낙담할 것이 분명했기에 한참을 망설이다 보러 갔다는 거.
-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그냥 호러물이라는 정도만 인지한 상태에서 관람했는데, 사실 호러물이라기도 뭐하다. 일단 배경이나 캐릭터 설정은 일반적인 고딕 호러의 그것들을 충실히 깔아 놓고 있기는 한데, 내러티브는 의외로 문학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고 스릴러적인 요소 또한 포함되어 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또 막 심장 간장 쪼여드는 스릴러는 전혀 아닌데, 왜냐 하면 중간에 몇몇 뻔히 비치는 (지극히 의도적인) 복선 노출을 통해 패를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 눈썰미 좀 좋은 사람이라면 초반부의 원고 서두 작성 중 비키 이름이 V로 바뀌는 씬에서 V를 통해 딸(비키)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테고, 눈썰미가 나쁜 사람이라도 중반부의 위자보드(양키판 분신사바)에서 대놓고 B를 두 번씩이나 찍어서 범인의 이니셜을 알려주는 데서야 누가 머더러인지 모르고 보기가 더 힘들 정도.
- 내러티브가 문학적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에드가 앨런 포의 저작들에 깊이 기대고 있으며, 중간중간 등장하는 씬들에서는 오마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뭐 싸구려 스티븐 킹 소리 듣는 삼류 작가 홀 볼티모어(발 킬머 분)가 에드가 앨런 포가 묵었었다는 호텔 현판의 포 명패에 술을 부으며 존경한다고 고백하는 씬 같은 건 오마쥬라기보단 그냥 경배 그 자체.
-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은 현실 파트와 꿈(환상)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꿈 파트에서의 화자가 바로 앨런 포이며 더 레이븐(갈가마귀)을 필두로 한 자신만의 문학론 등을 강의해 주기도 한다. 영화의 배경적인 베이스는 종루 속의 악마를 거의 그대로 따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살인 시퀀스 등의 세부적인 연출에서도 아몬틸라도 술통 등 앨런 포의 작품들에서 쓰였던 수법이 적용되고 있다.
- 그 밖에도 에드가 앨런 포로 분한 벤 채플린의 대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기에, 앨런 포 저작을 좀 접해 본 사람이라면 한층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꺼고 반면에 앨런 포가 대체 뭐임? 이런 사람에겐 영화 자체가 상당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듯.
- 작년에 나왔던 더 레이븐은 아예 에드가 앨런 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각색한 영화였는데, 더 레이븐 쪽이 영상의 고어함은 훨씬 심하지만 포 문학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음산한 기운은 이 트윅스트 쪽에 더 잘 표현되어 있는 느낌. 존 쿠삭이 연기했던 앨런 포도 나름 어울렸지만 벤 채플린이 내가 상상하는 포 쪽에 조금 더 가까운 룩스이기도 했다.
- 프란시스 코폴라가 메인스트림 블록버스터를 찍던 시절은 이미 예진작에 흘러가 버렸고, 요즘은 거의 독립영화감독 비슷한 스타일로 작품들을 제작/촬영하고 있는데, 이 트윅스트도 역시 거장 노감독의 신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신선하고 재기 발랄한 영화다. 비록 소재는 고릿짝 해묵은 에드가 앨런 포지만 연출이나 프로덕션 디자인은 마치 기예르모 델 토로 사단의 신진 감독들과도 비슷한 느낌. 그러니까 딱 돈 비 어프레이드나 마마같은 고딕 호러물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풍긴다.
-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인상적인 트래킹씬이나, 현실에서 꿈으로 빠져드는 순간 45도 각도로 기울어지는 앵글샷, 흑백을 기조로 깔면서 레드톤만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노출시켜 기괴함과 미려함을 동시에 잡아낸 센스 등은 프란시스 코폴라의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 주는데, 사실 뭐 대부 시리즈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물건 찍었던 양반이 이 정도 연출 솜씨 보이는 거야 딱히 놀라울 것도 없긴 하다. 파괴자들 구리다고 막 뭐라 했지만 사실 거기서도 중간중간 올리버 스톤다운 돋보이는 연출을 찾아볼 수 있긴 했다. 워낙 시나리오 자체가 재앙이라 만회가 안 되긴 했지만서도.
- 이런저런 잡설이 많았는데, 이 영화는 저예산인 탓이 아무래도 크겠지만 배경이 지극히 제한적인 데다, 상기 언급했듯이 에드가 앨런 포의 저작들을 소재로 깔고 있고, 패마저 전부 공개한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반전의 재미 같은 것 또한 느끼기 힘들다. 여러모로 국내에서 개봉 안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한 느낌.
- 오히려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은 영상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구질구질한 현실 파트와 대비되는 꿈 파트의 영상미는 대단히 아름답다. 또한 꿈 파트에서의 메인 캐릭터격인 뱀파이어(?) 소녀 엘르 패닝의 매력이 폭발하는데, 솔직히 난 엘르 패닝의 고딕풍 (코르셋으로 허리를 한껏 조여맨) 원피스 차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7,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난 원래 다코타 패닝보다 엘르 패닝을 더 좋아하는데, 언니가 좀 도회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동생 패닝은 피부톤이 창백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겨서 (거기다 요즘은 키도 훌쩍 커 버렸고) 호러물 함 찍으면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트윅스트에서의 배역은 그야말로 나이스 캐스팅.
- 미개봉작이고 하니 이미지 하나 끌어와 보면 이런 룩스로 계속 스크린을 활보한다. 엄청 이쁨. 호두까기 인형 같은 건 이젠 찍지 말고 호러퀸이 되어 주길.(가능성 제로)
- 정작 주인공인 발 킬머 얘기는 전혀 안 했는데, 뭐랄까 보고 있으면 좀 서글퍼진다. 그래도 한 땐 배트맨까지 했던 양반이 이렇게 살찌고 늘어져서 삼류 소설가 배역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있으면 세월무상이 느껴진달까. 아마 코폴라가 발 킬머를 캐스팅한 건 극중 캐릭터와 중첩되는 이미지도 어느 정도 고려해서일 듯. 배역 소화 자체는 상당히 괜찮다.
- 오프닝에서의 나레이션은 프란시스 코폴라 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알 만한 톰 웨이츠. 뭐 음반도 내고 그러지만 목소리 자체가 워낙 유니크해서 어디다 많이 듣던 목소리다 했는데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톰 웨이츠 나오는 거 보고 아 그렇지 싶었다.
- 그 밖에 그럭저럭 비중 있는 악마 숭배자 기믹 캐릭터로 엘든 이렌리치가 등장하는데, 얼마 전에 박찬욱 최신작 스토커에서 엄청 찌질하게 나오더만 여기선 카리스마 작렬이라 좀 웃기긴 했다.
- 영화 상영 후엔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영화 관련한 이런저런 썰을 풀어 주셨는데, 대부분 에드가 앨런 포 관련 네타들이라 딱히 새롭게 귀에 들어와 박힌 건 없었고,(솔직히 그냥 영화 보면서 나도 다 떠올렸던 것들이라...오히려 빠진 게 좀 있을 정도) 그래도 이 영화가 프란시스 코폴라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는 참 유익했다. 아들을 사고로 잃은 건 전혀 몰랐었는데, 굳이 패를 다 보여주고서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간 게 그제서야 이해가 됐으니.
- 근데 말미에 갑자기 고다르 얘기 꺼내면서 치명적인 아름다움 운운한 건 좀 너무나간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떤 취지로 얘기하시는 건지는 이해가 가긴 하는데, 그렇게까지 담론화시키기엔 이 트윅스트는 그냥 소품 느낌인지라.
- 어쨌든 국내 극장가에 정식으로 걸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물건을 극장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어서 나름 좋았다. (별 기대 안 했던) 화질도 의외로 상당히 깨끗했고 자막도 그리 나쁘지 않은 퀄리티. 3월 중에 아마 한두번 더 상영하는 걸로 아는데 관심있는 분은 챙겨 보셔도 나쁘진 않을 듯.
- 트윅스트 외에도 국내 미개봉작이나 묻혔던 작품들을 틀어주고 있는데 난 제이 에드가랑 토리노의 말 정도 보러 갈 생각. 제이 에드가는 그렇게 개봉하기를 기다렸건만 결국 DVD 직행해 버렸고 토리노의 말은 어째 연대가 안 맞아서 두 번이나 예매해 놨다가 취소했는데 이번이 아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
by Lucier | 2013/03/11 22:47 | Movie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Lucier.egloos.com/tb/393729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