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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년 초에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중에 맛있는 청혼이던가 제목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맞을 꺼다. 아무튼 그런 짱깨집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 주인공이 정준이었고, 신데렐라 타입 여주가 소유진, 대충 서브 여주 내지 악역은 아니지만 반동인물 정도가 손예진이었는데 드라마랑은 담을 쌓고 사는 내가 10년 넘게 지난 드라마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이등병 때 반강제로 보던 물건이기 때문.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 조역들도 막 지성, 소지섭 이런 지금은 완전 커 버린 애들 나왔더랬는데 암튼간...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교대 혹은 논산 거쳐서 자대에 들어오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쯤 노란 견장을 달아주고 강제로 관심사병이 되어 아무 일도 안 시키고 TV 시청 머신을 만드는데 TV를 보고 있자면 고참들이 무슨 가수 좋아하냐 무슨 탤런트 좋아하냐 이런 거 묻는 게 맨날 일이라, 당시에도 난 이나영 광팬이라서 이나영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 새퀴 특이하네(지명도가 지금보다 훨 낮던 시절) 하면서 뮤직뱅크 방송할 때 신병 좋아하는 이나영 나온다고 맨 앞에서 보게 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뮤직뱅크 엠씨가 이나영이었는데 군대에서도 이나영을 볼 수 있다는 건 참 기뻤지만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던) 싸이 춤 따라해보라고 계속 당했던 건 지금 생각하면 빡친다. 그건 그거고, 군대는 원래 22시면 그냥 불끄고 쳐자야 하지만 일직사관이랑 쇼부만 잘 치면 소위 연등을 해서 드라마 하나 정도 보고 잘 수 있는데 그 당시 고참들이 침 질질 흘리면서 보던 드라마가 바로 맛있는 청혼이었고, 이등병은 그냥 무조건 같이 봐야 되는데 보고 있으면 맨날 소유진이랑 손예진이랑 누가 더 예쁘냐고 해서 손예진이 더 예쁜 것 같습니다 했더니 이 새퀴 진짜 특이하네 하면서 갈굼을 당했었는데 그 무렵엔 열에 아홉은 다 소유진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소유진과 손예진의 포지션을 생각해 보면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 하는 병신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그 후로 손예진 나온 드라마...는 별로 안 봤었도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저 소유진이랑 비교하면서 갈굼당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내게는 맛있는 청혼이 아직도 손예진의 대표작으로 기억에 남는다. 쓸데없이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서른줄에 접어든 손예진의 신작 오싹한 연애를 감상했는데 어째 아내가 결혼했다, 백야행 같은 최근작들에 비해 예전 군발 때 보던 손예진 느낌이 떠오르는 게 아무래도 장르 탓인 것 같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손예진 내세운 영화 중에는 상당히 볼 만한 축이었다. 타이틀인 오싹한 연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호러와 로맨스를 믹스한 영화인데, 보기 전에는 로맨스를 주로 깔고 호러는 그냥 분위기만 내던가 양념 정도로 쓰였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의외로 호러 파트도 꽤 본격적이고 비중이 예상보다 컸다. 8 : 2 정도 예상했는데 6 : 4 정도 되는 느낌이었달까. 안 좋게 얘기하면 호러 파트는 본격 공포영화에 비해 밀도나 연출이 떨어지고, 연애 파트는 본격 로맨스 영화에 비해 달달함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엔간한 허접한 공포영화(..가 특히 국산 중에 많다 슬프지만)나 양산형 로맨틱코미디에 비하면 결코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데, 이는 호러 파트와 로맨스 파트간의 전환을 비교적 스무스한 연출로 버무려 낸 감독의 솜씨를 칭찬해 줄 만 하겠다. 손예진의 상대역을 맡은 이민기는 언제봐도 늘 그렇듯이 엄청난 기럭지가 가장 인상적인데, 이번 작에선 의도적인건지 모르겠지만 다크써클이 참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좀 안쓰러운 감마저 들었다. 로맨틱 아일랜드나 오이시맨에 비해서는 캐릭터 설정 자체도 훨씬 들어맞는데다 연기력도 예전에 비해 나아진 느낌에 뭣보다 손예진이랑 그림이 그럴싸하게 나와서 캐스팅은 아주 잘 됐다고 본다. 어쩌다 보니 퀵 정도 빼고 이민기 나온 영화 거진 다 본 거 같은데 기럭지 말고 마스크도 괜찮다고 느낀 건 이번 오싹한 연애가 처음인 듯. 손예진은 뭐 부연해서 언급할 것도 없이 그냥 딱 손예진스러운 목소리, 표정연기, 제스쳐로 일관하는데 이게 요새 날이 추워서 그런가 보면서 아주 그냥 살살 녹더라. 손예진 정도 되면 사실 주사가 암만 심해도 다 커버 쳐 줄 수 있고, 귀신 같은 거 암만 달라붙어도 얼마든지 감내 가능하지(나야 원체 오컬트 쪽으론 무덤덤하달까 되려 흥미를 더 느끼는 편이기도 하고) 생각했는데 후반부에 막 지게차날에 뜨이고, 고공 간판 떨어지고 할 때는 이건 안 되겠다 싶긴 하더라.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참 보는 내내 짜증났었는데 오싹한 연애에선 어찌나 귀여운지 역시 최고급 룩스도 캐릭터가 받쳐 줄 때 시너지 효과가 폭발한다는 걸 새삼 실감했고, 중간 과거 회상씬에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으로도 나오는데 오늘에서 송혜교가 대학생 차림으로 나왔을 때보다도 위화감이 더 없어서 이건 정말 사기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음. 호러와 로맨스라는 완벽하게 판이한 장르를 혼합시키다 보니, 아무래도 통일성 면에선 깔끔하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고 결말부에서는 약간의 맥거핀으로 느껴질 정도의 공항 시퀀스를 삽입해서 매조지를 서두르는 등 약간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연들의 맛깔나는 백업과 더불어 손예진-이민기 커플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퍼포먼스는 근래 나온 한국 로맨틱코미디물 중에는 제법 괜찮은 축에 든다고 할 수 있겠다. 쭝궈식으로 최근에 본 것들 나열해 보면 오싹한 연애>티끌모아 로맨스>>>>커플즈>>>>>>>>>>>>넘사벽>>>>>>>>>>>>>>>>>>>>>>너는 펫=완벽한 파트너 정도로 요약 가능. 원래 감정이 좀 메마른 편이라 이런 영화 암만 봐도 연애 세포 동결모드 절대 안 깨지는데 이거 보던 날 워낙 추워서 그랬나 몰라도 보고 나니깐 연애해 보고 싶은 게 연말은 연말인 건가 싶던 것도 딱 보고 나올 때까지 느낌이고 술 좀 빨고서 담날 숙취로 꺽꺽하고 있자니 그냥 손예진 참 이뻤던 기억만 남아 버렸다. 흥행 스코어가 제법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인데, 확실히 괜찮은 물건이니 함 챙겨들 보셔도 나쁘진 않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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