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원작이 너무나도 유명하기에 영화화가 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 머니볼. 세간의 평은 놀라울 정도로 호평 일색인데 개인적으로는 기대치가 높은 것도 있긴 했지만 그냥저냥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가장 재미나게 즐길 수 있을 부류의 관객은 그냥 적당히 야구에 관심 있는 일반적 수준의 팬이 아닐까 싶은데, 대충 MLB에 오클랜드 에이스란 팀이 있고 모자 배색이 참 이쁘지 정도로는 알지만 빌리 빈이나 폴 데포스데타는 누군지도 모르고 머니볼은 읽어보기는 커녕 그게 책인지 뭔 공놀이인지 첨 듣는 사람 정도면 아주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예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꺼고, MLB 광팬이거나 머니볼을 숙독한 사람이라면 영화 내내 소소한 컷에서 리얼리티를 발굴해내려 애쓰는 동시에 원작과의 차이점을 파헤치고 부자연스러운 자막에 불쾌해하느라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힘든데 난 딱 후자에 속해 버렸던 거다.

좀더 디테일한 예를 들자면, 영화 러닝타임 딱 중간 쯤에 테렌스 롱이 2루 훔치다 죽는 장면을 빌리 빈이 수상기로 지켜보다가 갑자기 카메라 앵글이 전환되고 와장창 깨지는 소리만 들려오는 씬에서, 그 짧은 장면에서의 러너가 테렌스 롱이라는 걸 깨닥고 와장창하는 굉음이 무얼 의미하는 지 단박에 알아채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드라마보다 다큐로 받아들여서 맘껏 감동할 수 없을 꺼고 차라리 그냥 어이구 시끄러워 뭔 소리지 하는 사람이 푹 몰입해서 영화판 머니볼에 빠질 수 있는 부류라는 얘기.

아무래도 경영서의 느낌도 강했던 원작을, 드라마 위주의 영화로 재편하다 보니 다른 점도 많고 의도적인 연출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일단 폴 데포스데타 대신 들어간 피터 브랜드가 처음부터 빌리 빈의 휘하가 아니라 마크 샤피로 밑에 있던 걸 스카웃해오는 초반 도입부는 영화적으로야 흠잡을 데 없는 연출이지만 나는 일단 딱 든 생각이 '이게 뭐냐'. 뭐 샤피로 호구 만드는 거야 별 상관없는데 폴 데포스데타가 자기 실명 거론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다더니 그래 그런지 이름도 바뀌고 예일대 경제학 전공이라네.

데포스데타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출연인물들 대부분이 당시 현역 선수 및 코칭스탭이었기에 딱 등장하는 순간 현실에서의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아트 하우만 해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맡아서 이름값에 걸맞는 출중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난 실제의 아트 하우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게 쉽게 적응이 되질 않는 거다. 아트 하우 치곤 너무 후덕해서 이건 무슨 론 가든하이어 느낌이랄까.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저스티스도 연습타격하는 폼은 참 제대로 재현해 냈는데 정작 생긴 건 어딘가 아니고 에릭 차베즈도 좀 이상하고 그나마 스콧 해터버그는 상당히 캐스팅이 잘 됐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비슷한 건 론 워싱턴 배역 맡은 흑인 할배.

단순히 캐스팅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씬들도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제법 많은데 매그난테에게 직접 경질을 고하는 빌리 빈이라던가, 카를로스 페냐 마이너로 보냈던 건 싹 사라지고 갑자기 방출로 건너뛰어 버리고, 스콧 해터버그 계약 제의할 때는 전화로 통화했었는데 영화에선 집 앞까지 찾아가 전화하고 불쑥 들어가선(론 워싱턴까지 동행해서) 다과를 얻어먹으면서 1루수로 뛰삼 해 버리는 통에 원작에선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였던 해터버그가 가족들 데리고 테니스코트 옆에 배팅티를 놓고 와이프한테 땅볼을 굴려달라는 부분이 그냥 날아가 버렸다. 영화에 나오면 나름 감동적이겠다고 혼자 기대하고 있었기에 좀 실망.

또 원작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 중 하나였던 빌리 빈이 아로요랑 송승준 싸잡아서 까는 컷도 은근히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안 나왔고 반면에 원작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빌리의 가족사는 영화 내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딸내미가 참 조숙하게 나오는데 노래도 잘하고 깜찍하더라.

원작에서도 빌리 빈이란 인물의 비중은 대단히 컸지만 영화 머니 볼에서 브래드 피트의 비중은 그 이상으로 절대적인데, 연륜이 묻어나는 공감할 만한 연기를 보여 준다. 근데 사실 뭐 빵발 횽아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지는 벌써 제법 오래된 지라 이 정도 연기는 해 주지 않으면 곤란한 것도 사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룩스만 봐서는 도저히 아트 하우답지 않지만 역시 짬밥이 있는만큼 수준급 연기를 보여주는데, 문제는 이게 연기력이 뛰어나다 보니 허수아비 수준에 그쳐야 할 아트 하우가 은근히 카리스마마저 느껴진다. 그냥 좌우놀이 정도만 하는 클래시컬한 야구 매니저 정도 기대했는데 영화에선 아무래도 극적인 면도 살리려는 의도도 보이지만 빌리 빈한테 막 개기기도 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20연승 도전경기에서 11대0 이후 벌어지는 경기진행씬인데, 원작에선 마이너 경기를 보러 가려던 빌리 빈이 홍보팀 스탭들의 등쌀에 못이겨 경기장에 남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목을 영화에선 차 몰고 가다 마누라랑 딸내미 전화를 받고선 스코어 확인하고 유턴을 돌리는 그야말로 영화스러운 연출로 바꿔 놨고 채드 브래드포드 등판 장면은 의외로 별 임팩트 없이 지나가버린 데다 디테일하게 파고 들면 스코어와 투구 장면이 아귀가 안 맞기도 하고, 뭣보다 해터버그 리드오프 홈런 장면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왠걸 너무 담백하게 끝낸 감이 있다. 그림슬리의 투구를 놓고 짱구를 굴리는 씬을 슬로우컷으로 좀 삽입했으면 더 진빼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참 영화적으로 잘 나가다가 매조지는 정작 시시하게 깔끔했다.

자막은 참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의미 전달이 안 되게 틀린 부분까진 없었지만 조금씩 다 어색했다. 뭐 세부적으로 까기엔 너무 가짓수가 많아서 일일이 들고 싶은 기분도 안 들고, 다만 대체 왜 건(件)을 죄다 껀으로 표기해 놨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찌나 거슬리던지.

그리고 존 헨리 만나고 와서 제레미 브라운 영상 보여준 후 엔딩 직전의 텍스트 씬에서 연봉으로 1250만불을 제의받았다는 자막은 정말 어이가 없는 오역인데 근 10여년 전에 단장한테 연봉으로 1250만불 주는 게 말이 되나. 번역자가 프로스포츠에 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 참고로 텍스트 원문에도 그냥 Offer라고만 되어 있는데 대체 연봉은 무슨 상상력으로 써서 넣은 건지 의문스럽다. 모르면 감수라도 좀 받던가.(실제로는 5년에 1250만불 제의였음)


결국 이렇게 감상평도 아니고 영화 얘기도 아니고 원작은 어땠는데 영화는 이래 버리네 어쩌네 장광설만 풀어버리게 되는 게 나같은 MLB팬 & 원작 독자는 정작 영화판 머니볼에는 쉬이 몰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케이스인 거다. 이게 참 또 묘한 게 요즘은 MLB 예전만큼 관심이 없어서 상세하게는 모르는데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은 한참 메이저리그 빠져서 신나게 볼 때라 선수들 실명으로 등장하니 새록새록 그 시절이 떠오르는지라.

영화 내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MLB 실제 경기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게 흑백시절 클래식 씬들이야 그렇다 쳐도 21세기 경기 씬들도 어째 화질이 영 구리구리해서 좀 의아하긴 했다. 얼마전에 봤던 세나 전기영화에 나온 90년대 F1 실황씬보다도 옛스러운 게 무슨 70~80년대 경기쯤 되는 그런 느낌. 일부러 열화시킨 것 같진 않은데 암튼 뭐 대충 영화스럽기도 하고 해서 불만스러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더 깨끗했으면 아마 난 선수들 추억하느라 영화에 몰입은 더 힘들었을런지도.


결론 : 머니볼 읽어 본 적 없고 딱히 MLB 관심없지만 그냥 프로야구는 신나게 즐기는 사람이 보러 가면 적당히 감정이입해 가면서 즐겁게 볼 수 있을 영화.
by Lucier | 2011/11/22 21:39 |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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