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원래 자고로 유명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탄 영화는 잘 만들었음에도 재미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이렇게 황금상 시리즈가 삼두마차라 할 수 있고 개중에서도 칸 영화제 수상작이 재미없기론 으뜸이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아카데미 작품상들은 상대적으로 그래도 좀 재밌는 것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어째 아카데미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암튼 이 트리 오브 라이프는 2011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 일말의 불안감이 있긴 했는데 최근 제시카 차스테인에 꽂혀버린 죄로 개봉하면 꼭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브래드 피트 부인으로 나오는데, 난 그래도 브래드 피트 빨이 있으니 2~3주는 틀겠지 방심하고 있다가 상영관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막 다 내리는 분위기라 어제 부랴부랴 보러 갔었다. 사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속도 좀 얹히고 해서 컨디션이 최악이었는데 이거 보고 나서 잠도 잘 안 오고 오늘 점심 무렵까지 고생하다가 이제 좀 겨우 괜찮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브래드 피트가 나옴에도 상영관도 얼마 못 잡은 데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 액션물은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게 아예 화끈하게 일직선으로 내지르는 걸 좋아하는 반면에 드라마는 뭔가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을 선호한다. 그래서 엔간한 자아성찰물들도 잘 소화하는 편인데, 이 트리 오브 라이프는 그런 단순한 성찰물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단에 수록된 시놉시스를 발췌해 보면..

"아버지, 그 시절 당신이 미웠습니다." 중년의 잘 나가는 건축가 잭, 그는 늘 같은 꿈을 꾸며 눈을 뜬다. 19살 때 죽은 동생에 대한 기억...오랜만에 아버지와 통화를 한 잭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언제나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엄마와 달리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 오브라이언. 맏아들인 잭은 권위적인 아버지와 자꾸 부딪히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엔 미움과 분노가 자리하게 되는데...

이렇게 쓰여 있고, 광고성 문구로 영화사상 가장 경이로운 대서사시, 스크린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영상미와 탁월한 서사구조 어쩌고 막 자랑스럽게 나열되어 있는데 저기서 공감할 수 있는 건 압도적인 영상미 뿐이다.

시놉시스만 보면 뭔가 전형적인 미국의 근대물 홈드라마 같은 느낌이지만 이미 초반 십여분 정도만 봐도 아 이건 그런 만만한 물건이 아니구나 바로 느껴지는데, 난 속이 안 좋던 차에 막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탁월한 서사구조라기보단 괴이한 서사구조가 더 적합한 어휘선택이라고 여겨지는데 욥기의 한 구절을 나지막하게 읽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다가 도입부 중간에는 15분짜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스러운 영화 속 영화가 들어가 있다. 가뜩이나 상영관에 사람 별로 없었는데 이 영화 속 영화 끝나고 몇 명 나가더라. 아마 브래드 피트만 믿고 왔다가 욕하면서 나갔을 것 같은 느낌.

감독이 테렌스 맬릭인 데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탔으니 당연히 영화가 어느 정도 철학적일 것임은 예상했고, 개인적으로 철학을 논하는 컨텐츠들을 싫어하지 않는 편이라 조금은 만만하게 보고 갔었는데 나 또한 테렌스 맬릭을 과소평가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많은 상징적 장면, 형이상학적인 개념들, 대사라고 하기도 뭐한 기도와 고백들로 점철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에 아주 오소독스한 변증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변증법이 담아내야 하는 정과 반이 창조론을 시발점으로 시공을 초월해 범우주적인 차원까지 확장되기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봐서는 도대체 뭘 얘기하려 드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고, 사실 골똘히 생각하면서 봐도 뭔 소린가 싶을 수준이다. 나도 컨디션이 좀 좋을 때 집중하면서 봤으면 상대적으로 좀 나았을 꺼 같은데 메스꺼운 상태에서 막 쪼임까지 받으면서 보니 영화 보면서 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될 정도였다.

정반이 세포차원의 미시적 관점에서부터 우주적인 거대담론까지 맥시멈급의 확장성을 지니고 있음에 반해, 합이 되는 결론은 의외로 간단한데 결국 사랑이란 얘기다. 15분 가량의 쌩뚱맞은 다큐 영상물을 제외하고도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러닝타임 내내 테렌스 맬릭이 주지시키려는 것은 사랑인데 얼핏 그럼 진부한 사랑 얘기냐 묻는다면 상기 언급했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트리 오브 라이프의 스토리텔링은 뭐라 변명할 것도 없이 매우 불친절하고, 템포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하며, 중간중간 깔리는 브람스, 바흐 등등 클래식 명곡들은 웅장함이나 안정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자의식 과잉의 발현이 아닌가 싶어 좀 불편하기까지 하다.

예전에 더 폴을 보면서 영상은 S급인데 재미는 C급이구만 생각했었는데, 트리 오프 라이프는 이런 스타일 영화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감히 저런 식으로 매겨 보자면 영상은 S+++ 벗뜨 재미는 F급이라 할 수 있겠다.

브래드 피트, 숀 펜이라는 특급 배우에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제시카 차스테인을 주연으로 투입했음에도 배우들이 영상과 시나리오에 매몰되어 마치 소품처럼 느껴지는 건 어찌보면 대단한 재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99% 이상을 차지할 일반적 성향의 관객에게 이런 영화는 티켓 가격과 만족도의 비례관계를 저울질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첫번째 이유였던 제시카 차스테인은 비중이 생각보다도 커서 상당히 많은 씬에서 등장함에도 이 경이로울 지경으로 파격적인 극전개에 벙쪄서 별로 여배우 보면서 헤벌쭉할 계제는 전혀, 네버, 1그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해 보자면 근래 본 제시카 차스테인 영화 세 편에서 죄다 과거 캐릭터로만 나오는데, 다음에는 현대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 포스팅하면서는 든다. 영화 볼 때는 너무 황망해서 그런 생각도 전혀 안 들었고.

영상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가뜩이나 불친절한 스토리텔링이 중반에서 후반부 넘어가면서 더더욱 늘어지고 클라이막스에서는 전위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난해함으로 일관한 이 영화는 아마 결코 잊기 힘든 물건이 될 것 같다. 별로 내가 억지로 보자고 한 건 아니지만 같이 본 사람한테도 엄청나게 까였다. 근데 어떻게 반박을 할 수가 없었음.

어지간하면 오기로라도 컨디션 좋고 정신 말똥말똥할 때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글쎄 차마 극장에서 다시 볼 엄두는 안 나고 몇 년 후에 듭드라도 함 구해서 보고 싶어질런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거 영상으로 봐서는 BD 발매되면 아마 레퍼런스 타이틀화 가능할 듯도 싶다.
그래도 포스터 얻어온 건 참 멋지다. 미끈덩하게 좋은 재질이라 붙여 놓을까 생각 중.
저번에 얻어온 네 번 포스터랑 같이 붙여 놓으면 허세 부리기엔 최고일 것 같다.


P.S> 주말에는 쟈니 잉글리쉬2 라도 보면서 트리 오브 라이프 후유증을 좀 떨쳐내야겠다.

by Lucier | 2011/11/03 23:10 |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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