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이브
우선은 트루 그릿(True Grit)이라는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고 발음상 어감도 간결, 깔끔한 본래 타이틀을 굳이 더 브레이브로 탈바꿈시킨 수입사(..인지 배급사인지 아무튼 CJ지 뭐)에 욕 한사발.

사실 트루 그릿->더 브레이브 정도면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같은 부류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축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더 브레이브? 용감한 사람들? 브레이브맨?? 군용빤쓰??? 로 이어지는 연상작용에 의해 정말 개같은 네이밍이 되어 버렸다. 이거 국내 타이틀 정한 사람 여자 아니면 미필자에 한 표.


각설하고 영화 얘기를 좀 해 보자면, 코엔 형제의 전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번 애프터 리딩, 시리어스맨이 그야말로 3연타석 그랜드슬램을 작렬시켰기에 이번 신작 트루 그릿도 굉장히 기대가 컸다.

그래 개봉하고 첫주말에 슥 보러 갔는데, 블랙스완에 밀린 모양이라 상영관 수도 영 적고 암튼 소규모 개봉.

리메이크작인 건 알고 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서사 자체가 의외로 오소독스한 정통 웨스턴이다. 스토리텔링도 일직선 진행에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이 매우 뚜렷해서 전혀 머리 쓸 것 없이 그냥 화면만 따라가면서 즐기다 보면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시원시원한 템포. 반전, 복선 그런 거 없다. 신나게 말달리고 신나게 총쏘다 끝난다.

코엔 형제 특유의 재기발랄함은 스토리텔링보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리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정통 웨스턴의 포맷을 따르고 있기에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맛깔스런 대사들과 주연인 제프 브리지스의 엄청난 연기에 힘입어 자칫 밍숭맹숭할 수 있었던 극전개에 상당한 수준의 박진감을 입힐 수 있었다.

14세 양갈래 땋은머리 소녀가 화자 겸 키캐릭터 포지션을 맡고 있는데 너무 똘똘하고 겁없이 당차서 오히려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지만 이 트루 그릿 자체가 하드보일드 정극이라기보단 휴머니즘을 가미한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겉돌지 않고 극전개 내내 잘 어우러진다. 윈터스 본의 제니퍼 로렌스도 그랬었지만 쌀나라는 연기 출중한 여자애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게 좀 놀랍다.

여담이지만 얘(이름이 복잡해서 기억하기 힘든)가 실제로도 14살이라던데 요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올랐다가 물먹었음.
근데 영화 내내 여자라곤 얘 혼자 뿐인데(초반에 코고는 할매 한 명 뒷태만 나오긴 하지만) 여우주연 쳐 줘도 되지 않나 비중도 제프 브리지스랑 투톱인데 굳이 왜 조연인가 그냥 혼자 좀 궁금했더랬다.

맷 데이먼은 제프 브리지스랑 동급 아니겠나 싶었는데 의외로 사이드 쪽에 선 캐릭터. 물론 말미에 큰 활약 보여주긴 하지만 브리지스에 비해서는 큰 임팩트 없이 평이한 모습. 혀 뽑힐 뻔 한 이후 어눌어눌대는 대사 처리는 참 좋긴 했다. 조쉬 브롤린도 특유의 싸한 분위기를 풀풀 내뿜는데 후반에 잠깐 나오는 거라 역시 크게 기억에 남진 않는다.

제프 브리지스는 그야말로 최고급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는데, 자칫 심심할 수 있었던 정통 복수극을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수준급 드라마로 승화시켯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 개인적으론 크레이지 하트 때보다 더 멋졌는데 작년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먹고 올해는 낙방. 뭐 킹스 스피치가 아직 개봉을 안 해서 콜린 퍼스가 얼마나 좋은 연기를 보여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작년에 받았으니 올해는 그냥 먹고 떨어진 셈 치라는 심사진의 심리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나 보고 현역 연기파 남자 배우 꼽으라면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이렇게 최고로 치는데 이제 제프 브리지스도 저 반열에 넣을 수 밖에 없어졌음. 사실 존 말코비치까지 넣고 싶은데 이 아저씬 그래도 아직 (상대적으로) 젊은 연배니 쫌더 기다리련다.


헌데 결론적으로 스탭롤까지 다 올라가고 나서 느낌은 좋기야 물론 좋았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감도 있었다. 영화고, 게임이고, 음악이고, 음식이고 간에 모든 취향 타는 컨텐츠는 기대치에 비례해서 만족도가 달라지는 게 세상의 이치라, 이게 그냥 잘 모르는 감독이 연출한 킬링타임으로 보러 간 물건이었다면 희대의 걸작이라 침이 마르게 빨아댔겠지만, 노나없~시리어스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3연타에 비해서는 솔직히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아주 약간 실망.

정통 스토리텔링임에도, 유쾌한 개그 코드가 도처에 산적해 있고 대사 센스도 매우 훌륭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최고급, 분위기에 어울리는 배경음악, 특유의 여운이 남는 결말까지 충분히 코엔 형제의 이름값은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굳이 최근작들과 비교해 보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숨이 턱턱 막히는 연출에 비해선 심심하고, 번 애프터 리딩의 배가 터질 것 같이 웃기는 핵폭탄급 코미디에 비하면 덜 웃기며, 아기자기하다 못해 가히 기계적인 느낌마저 드는 완벽한 각본의 시리어스맨에 비하면 머리 굴릴 일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이번엔 흥행작을 좀 만들어 보자는 기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역대 코엔 형제 영화들 중에 미국내 흥행 성적은 가장 좋은 편이라는 모양. 확실히 그냥 일반적으로 남들에게 권하기엔 제일 무난하긴 하다. 파고, 노나없, 래보스키, 번애프터리딩, 시리어스맨 이런 건 나야 암만 재밌게 보더라도 누구 다른 사람 보라기엔 또 애매한 면도 있지만 이 트루 그릿은 사람 가릴 구석이 거의 없는 영화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권할 수 있음.


..아 그리고 참 안타깝게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단 하나의 트로피도 못 건지고 광탈해 버렸다. 한두개라도 수상했으면 오스카 버프로 가늘고 길게 상영할 꺼 같은데 하나도 못 탄 덕분에 국내 극장가에서도 광속으로 내려갈 확률이 매우 높으니 행여 챙겨 보실 분들은 얼렁얼렁 알아서들 보시길. 아마 씨네큐브 정도 제외하고는 다음 주면 거의 다 내려가지 싶다. 블랙스완은 나탈리 포트만 덕에 장기 상영 갈 것 같고 월초에 파이터 한 몇 주 틀다가 다들 킹스스피치로 넘어갈 테니.


P.S> 리틀 블랙키라고 여주가 타고 다니는 검둥말이 한 마리 나오는데 초반 도하씬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 주더니 결국 클라이막스에 장렬하게 산화하고 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타라 돌아올 때 스칼렛한테 갈굼당하던 말 이후로 최고 불쌍한 말이었다. 축생주연상이 있으면 주고 싶을 정도.


by Lucier | 2011/03/01 22:03 | Movie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Lucier.egloos.com/tb/358981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