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타운

걸리버 여행기는 설 연휴 첫날, 타운은 막날에 봤는데 걸리버는 그래도 한 반 가까이 찼던데 반해 타운은 관객이 10명도 안 되서 야 어째 명절 연휴인데 이 모양이냐 싶었는데 역시 지금은 다 내린 모양. 하긴 뭐 걸리버도 흥행은 쪽박찬 것 같긴 하다만.

암튼 슥슥 날림 감상. 스포일러는 별로 없을 듯 하지만 알아서들 피해 가시고.


- 걸리버 여행기

원체 원작을 재미나게 보기도 했고,(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아동용 편집본 말고 오리지널을 보면 이거 진짜 개막장 뽕빨물) 잭 블랙이 나온다니 최소 평타 이상은 가볍게 치겠지 생각하고 봤다가 완전히 뒤통수 맞았다. 여지껏 잭 블랙 나온 영화 중 가장 재미없다고 단언한다. 전체적인 음악이나 대사, 분위기 등이 약간 영국 복고풍 느낌이 나는게 역시 잭 블랙이 주연했던 비카인드 리와인드랑 좀 비슷한 삘이 나긴 하는데 우리가 뭐 딱히 영국인 감성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일단 스토리텔링이 지리멸렬한 데다 설득력도 없고 잭 블랙 외 반동, 보조 인물들은 죄다 병풍에 그나마 룩스도 별로. 잭 블랙 자체도 여타 출연작들에 비하면 특유의 능글맞은 시니컬한 제스쳐나 개그 센스를 거의 발휘할 건덕지조차 없는 각본이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실망스러웠다.

더불어 3D 상영분밖에 없어서 3D로 봤는데 이건 뭐 진짜 자막만 3D랄까. 작년 본 3D 영화 중에 타이탄이 제일 구린 3D 연출이었는데 걸리버 여행기에 비하면 타이탄은 뭐 박진감 넘치는 수준.

유일한 장점이라면 러닝타임이 상당히 짧아서 얼른 보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

가능성은 거의제로에 수렴하지만 훗날 언젠가 팀 버튼이 연출 맡아서 돈도 좀 쳐 붓고 개뽕빨 원작을 제대로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타운

걸리버 여행기에 비하면, 거의 아무런 기대 없이 그냥 레베카 홀이나 봐야지 하고 본 영화인데 의외로 기대 이상. 벤 에플렉 연출작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전체적으로 끌고 나가는 능력이 나쁘진 않았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레베카 홀은 프로스트 대 닉슨에서 프로스트 여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비키로 나왔던 여인네인데, 피부가 상당히 안 좋다는 점을 제외하면 마스크가 제법 내 취향(약간 말상이긴 하지만)이라서 꾸준하게 출연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배우.

그게 내가 본 출연작이 저 둘이 다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굉장히 생김새나 몸가짐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클래시컬한 삘이 풀풀 난다. 마치 흑백으로 바꿔서 카사블랑카나 로마의 휴일에 집어넣어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아 그렇다고 물론 레베카 홀이 오드리 헵번이나 잉그리드 버그만 수준의 명배우란 얘긴 전혀 아니고 그냥 그림이 그럴싸하게 나올 것 같다는 얘기다. 반대로 제시카 알바나 메간 폭스 이런 아가씨들을 저 흑백 명화에 끼워 넣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면 그 역케이스가 되겠지.

어쩌다 보니 레베카 홀 찬양을 하고 있는데 암튼 레베카 홀 하나만 보고 타운을 보러 간 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이 영화에선 꽤나 사실적이고 건조한 촬영기법을 사용하다 보니 더러운 피부가 가감없이 드러나서 좀 슬프긴 했다. 뭐 다른 출연작들에서도 피부는 참 별로였음. 아 저런 분위기에 피부까지 고왔으면 나 개인적으론 거의 페이버릿 액트리스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나 따위 페이버릿 액트리스야 어찌되건 사실 별 상관없는 얘기고, 타운 얘기를 좀 더 해 보자면 신인급 감독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두사미 스토리텔링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시간 약간 넘어가는 러닝타임인데 한 50~60분 무렵 컷으로 치면 벤 에플렉과 레베카 홀이 관계를 갖고서 홀이 해변가에서 눈가리개를 푸는 메모리얼씬까지는 꽤나 박진감 넘치고 꽉 짜여진 느낌이라 야 벤 에플랙 이 횽아가 생각보다 훨씬 능력자였구나 했는데 후반은 이건 뭐 맥이 탁 풀리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고무줄 팽팽하게 늘여놨다가 갑자기 놓쳐서 축 쳐진 그런 느낌.

뭐 자타가 공인하는 레드삭스 광빠답게 무려 펜웨이파크 현금보관소를 통째로 턴다는 시퀀스 자체는 상당히 유니크하면서도 돋보일 수 있었는데 이게 물리적인 연출이 전혀 받쳐주질 못하다 보니 밍숭맹숭해져 버렸다. 영화 특성상 총격전이나 카체이스씬이 상당부분 등장하는데 카체이스 쪽은 그래도 평타 이상을 치고 있는데 반해 총격씬은 리얼리티와 스타일리쉬 양쪽을 모두 놓친 어정쩡한 연출. 사실 총격씬들이 마이클 만 영화들 절반 정도만 따라갔어도 평작은 훨씬 뛰어넘고 수작 소리까지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감이 든다.

비단 레드삭스 뿐 아니라 지역 풋볼팀 문신이 주요 단서로 등장한다던가, 남주 자체가 하키팀 프로 출신으로 지역의 자랑이었고 뭐 패거리들이 셀틱스 모자를 쓰고 나오는 장면 등등 크게는 메사추세츠, 기본은 보스턴, 작게는 찰스타운 이런 식으로 벤 에플렉의 보스턴 사랑이 아주 대놓고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벤 애플렉 나온 영화는 그.당.반 이후 꽤나 오래간만인데 어째 머리숱도 더 휑휑하고 이마에 주름살도 깊숙해져서 나이먹은 티가 심하게 나더라. 몇년 전만 해도 반 페르시 보면 벤 애플렉 생각나고 벤 에플렉 보면 반 페르시 생각이 났는데, 이젠 반 페르시 보면 옛날 벤 에플렉만 생각나고 벤 에플렉을 봐도 반 페르시 생각은 안 날 것 같다.

뭐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밀도가 확 떨어지고 결말도 영 설득력 없이 어어 하다 끝나긴 하지만 인기 배우 출신의 연출작임을 감안하면 사실 상당히 괜찮은 완성도다. 조금 더 경력이 쌓이고, 조언도 얻고 해서 액션씬 등의 디테일한 부분을 좀더 가다듬는다면 앞으로 나올 벤 에플렉 영화들에 상당히 기대가 된다.

결론적으로 레베카 홀 보러 갔다가 피부에 실망했지만 벤 에플렉을 다시 보고 왔음.

벤 에플렉 패거리 보스인 꽃집 주인 할배, 이름은 피트 어쩌고 암튼 라스트네임이 엄청 길어서 항상 기억을 못하는데 로스트월드에서 사냥꾼, 최근작이라면 인셉션에서 킬리안 머피 아버지로 골골대는 모습을 보여줬던 배우 분은 올 초에 사망. 결국 유작이 된 셈인데 고인한테 이런 얘기하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타운에선 하필 이름이 퍼기로 나오셔서 좀 싫던 차에 막바지 벤 에플렉의 고자샷(...) 터질 때는 꽤 통쾌하기까지 했다.

자막은 전체적으로 좀 이상했는데, 특히 신경쓰였던 게 시도때도 없이 계속 등장하는 '니밀' 첨엔 하도 니밀 니밀 나와서 이거 패거리 중에 무슨 무슬림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훡킹 나올 때마다 니밀로 뜨더만. 글쎄 니미나 니미럴은 많이 봤는데 니밀은 좀 생소하기도 하고 뭣보다 훡킹 번역의 일반적인 왕도라 할 수 있는 젠장, 염병할 정도로 써도 충분히 스무스하게 넘어갈 부분들을 한 80~90%는 니밀로 장식해 놓으니 보면서 계속 거슬렸다. 암튼 훡킹 번역이 사실 참 힘들긴 하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처럼 그 많은 훡유훡유훡유들을 죄다 '재수없어'로 통번역해 놓는 것도 문제고 근데 니밀은 어쨌든 난 참 어색했음.


각설하고 곧 닥칠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을 맞아 묵혀 뒀던(...) 중량감 있는 영화들이 대거 개봉되는데 24일에 트루 그릿, 블랙 스완, 3월 3일에 킹스 스피치 등이 잡혀 있다. 트루 그릿은 무조건 볼 꺼고, 블랙 스완도 나탈리 포트만 땜시 보고 싶긴 한데 그냥 친구와 연인 사이나 보고 때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대런 아로노프스키 영화임을 감안하면 포트만 양이 처참하게 망가질 것 같아서 좀 꺼려지기도.

트루 그릿은 배급사(..인지 수입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의 병신같은 센스로 인해 더 브레이브라는 타이틀로 개봉되는데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근 코엔 형제 영화들 보면 죄다 빵빵 터졌기 때문에 정말 기대가 크다. 미국에서 코엔 형제 작품답지 않게 흥행도 굉장히 잘 된 편이고. 시사회 챙겨서 볼 짬은 안 나겠고 개봉 주말에 바로 볼 생각인데 혹 관심있으신 분들은 같이 봐도 좋을 듯. 번 애프터 리딩 같이 본 사람한테 불평불만 한바가지 얻어쳐먹은 이후로 코엔 형제 영화는 그냥 혼자 보던가 코엔빠랑 보는 게 속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라.

by Lucier | 2011/02/13 23:19 |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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