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애프터 리딩,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 번 애프터 리딩

트레일러만 보고선 이건 죽인다 꼭 봐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찌저찌 타이밍이 안 맞고 동네엔 틀어 주는 극장도 없고 해서 못 보고 있다가 이러다 이번 주 신작 개봉하면 다 내리게 생겼기에,(실제로 시내 상영관은 8일이 다 마지막) 쭐레쭐레 코엑스까지 기어나가서 봤다. 아오 코엑스 너무 멀어서 정말 나가기 싫었는데, 단성사는 시간대가 아침 아님 심야고 롯데시네마는 그냥 좀 싫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투덜거리며 보러 나갔는데....이거 안 봤으면 큰일날 뻔 했다.

일단 완전 빠방한 출연진. 존 말코비치, 조지 클루니, 프란시스 맥도맨드, 틸다 스윈튼, 브래드 피트 5인방 중 말코비치야 늘 그렇듯 쩔어 주시고, 스윈튼도 항상 맡는 이지적이면서 차가워 보이는 배역 잘 소화했고, 맥도맨드 아줌씨도 최소한 연기에서는 까 댈 구석이 없고, 클루니 횽아랑 피트 횽아는 평소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찌질한 모습을 작렬해 주신다.

문제는 이게 완전히....블랙 코미디라 좀 국내 정서엔 안 맞는 듯. 상영관에 15명 남짓 있었던 거 같은데,(메가박스 코엑스 젤 코딱지 16관) 어째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웃는 거라.-_-;; 트로픽 썬더 볼 때도 그랬는데 왜 웃기는 장면에서 웃질 않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트로픽 썬더처럼 양키 개그/화장실 개그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약간은 육중한 브리티쉬삘 유머에 욕설, 허무 개그가 양념으로 깔리고, 전반적으로는 코엔 형제 특유의 풍자 네타가 섞여 있는데 뭐 지나친 우연의 일치가 거슬릴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연출 자체가 블랙 코미디의 일환이라 굳이 책잡아 까댈 거리는 또 아니고.(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얘기)

예를 들면 CIA 중급 정보관 자리에서 좌천되는 존 말코비치한테 다른 요원이 당신은 술을 자제 못해서 안 돼 하고 까대니깐, 말코비치가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던지면서 아이 헤브 어 드링킹 프라블럼?(4~5회 반복) 하더니 야이 십숑키야 넌 몰몬교도잖아(나 여기서 벌써 뿜었음) 너 빼곤 다 술빨아 18 아이 헤브 어 드링킹 프라블럼? 이러고 사표 쓰고 나왔더니 부인(틸다 스윈튼)은 왜 관뒀냐고 갈구고, 부인의 갈굼에도 아랑곳 않은 채 구국의 결단(...)으로 회고록을 집필하겠다고 깝쭉대는데, 이런 회고록의 의미를 알아주는(?) 건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아부지뿐이고 이 회고록 초안 CD가 이혼 전문 컨설팅 업체의 손에 떨어졌다가는 피트니스 센터에 떨궈지는데 거기 트레이너로 일하는 브래드 피트가 우연히 득템, 남자 후리러 성형수술 비용 급구하는 맥도맨드(역시 헬스클럽 직원)와 함께 쪼다 첩보질한다고 말코비치랑 접선하다 피트는 말코비치한테 펀치 맞고 코피 터지고 맥도맨드 빡돌아서 러시아 대사관으로 CD 들고 달려가고 클루니는 스윈튼이랑 바람피우고 어쩌고 하다 피트는 맥도맨드 사주로 말코비치 자택에 침입했다 엉겁결에 총맞아 뒈지고 이런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스토리텔링의 연속인데, 그래도 웃긴다. 진짜 엄청 웃긴다.

종반부에선 이 영화 통틀어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인 테드가 또라이 중의 상또라이인 오스본(존 말코비치)한테 '너같은 또라이들이랑 몇십년을 싸워왔어'라고 까이며 총맞고 달아나다 손도끼로 민대머리 찍혀 피박살나며 매조지되는데, 그래도 코엔 형제답지 않게 클로즈업은 안 하더라. 그리스 정교 사제로 14년 일했다는 테드가 바에서 위스키 소다 시켜 놓고 청승 떨 때부터 죽겠구나 싶긴 했지만 역시 코엔 형제는 코엔 형제. 아주 그냥 화끈하게 지르더만. 무려 브래드 피트가 저렇게 황당하게 대가리 터져 죽는 영화도 또 없을 꺼고.

클루니도 엄청 찌질하게 나오는데, 뭐 지하실에서 톱 들고 계속 뭘 썰고 자르고 만들면서 공포 분위기 조성하더니만 알고보니 반자동 딜도 체어(...)였다는 식의 지극히 非한국적인 유머의 연속. 클루니 曰, 홈쇼핑에서 비싸게 팔더라고. 내가 원래 마트에서 재료 사다 이것저것 만드는 게 취미이삼. 딜도 체어 보고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맥도맨드 아줌씨도 또 짱이고. 맥도맨드가 조엘 코엔 빽으로다가 계속 배역 따는 거 아니냐는 얘기 하는 사람도 있는데, 확실히 코엔 영화에서 좀 괜찮은 배역들을 맡긴 했지만, 그만큼 연기력이 받쳐 주니깐 뭐 불만은 전혀 없다. 끝자락엔 마누라한테 배신당한 클루니가 광분해서 이 자작 딜도 체어를 때려 부수는데 아놔 그 중요한 부위(...)가 띠용띠용 화면을 수놓는데 왜 사람들이 아무도 안 웃는 거야. 나 혼자 낄낄대며 웃으니 완전 싸이코삘.-_-;; 웃겨 죽겠던데 난.

브래드 피트는 벤자민 버튼에서도 그랬지만 완전히 회춘해서 30대로도 잘 안 보인다. 20대 후반 정도 룩스. 진짜 사기다 이건. 거기다 연기도 난 벤자민 버튼보다 여기서의 찌질한 연기가 오히려 더 맘에 들던데. 너무 급작스럽고 황망하게 가셔서 좀 깜놀. 하긴 그러니까 코엔 형제 영화지만.

어찌 보면 스토리텔링적인 면에서 어떠한 뚜렷한 결론이나 완결성이 사실상 없는 블랙 코미디라서, 그런 완성된 각본을 추구하는 관객에게는 확실히 별로일 듯. 아니 뭐 나도 완성된 각본 쪽을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대놓고 블랙 코미디에서 시나리오에서 완결성을 찾으면 절간에서 고기 찾는 격이니. 하지만 좀 꼬긴 했어도 결론이 있긴 있다. 라스트씬에서 CIA 국장 내지 팀장(..쯤 되어보이는 고위직)이 던지는 한마디. '앞으로 이런 일에 엮이지 말게' 그래 그냥 그게 결론인 거다. 쌀나라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 루트 타는 사람들 뭐 한둘도 아닐 꺼고. 그저 코엔 형제들이 비꼬고 까대는 거 보면서 웃고 즐기면 만사형통에 쫑. 씁쓸하다 치면 씁쓸한데, 뭐 개별적인 시퀀스는 틀림없이, 확실하게 웃겨 주니 코미디 영화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다만 유쾌한 웃음은 결코 아님에 유의.

사운드는 전체적으로 좀 과장된 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각 씬이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 편이다.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CIA 맨이라는 노래가 죽인다.

한마디로, 파고나 노나없(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좀 애매하고, 그럼 더 좋은 영화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파고나 노나없보다 웃기는 건 확실하다. 겁나게 웃긴다. 위대한 레보스키보다 더 웃긴다. 역대 코엔 브라덜쓰 영화 중에 최고로 웃긴다.

써놓고 보니 완전 두서없고 스포일러 전면 작렬인데, 뭐 어차피 다 내리는 분위기고 볼 사람들은 챙겨 봤을 테니...

국내 상영관이 지극히 적었던 건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몇 안 되는 관객들 보고 나가면서 다 욕하더라.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냐고. 아마 그 상영관에서 재밌게 본 건 나 혼자 뿐인 듯. 참 이럴 때 쫌 난감하다. 나만 무슨 별세계 사람인 것 같고.

..여담이지만, 그야말로 끝까지 등장인물들이 잭 일 다크 마냥(...) 퍽퍽퍽을 외쳐 대는데 이 퍽의 배리에이션을 개수작 혹은 옘병 정도의 자막으로 처리하고 있음에, 참 자막 치기 쉽지 않았겠다 싶음. 염병이 아니라 죄다 옘병인 게 좀 인상적이었다.


-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국내 타이틀은 차마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어지간하면 그냥 국내 개봉 타이틀로 포스팅하는데, 도저히 이건 그렇겐 못하겠다.
전단지의 저 선정적이다 못해 천박한 카피에 CGV 영수증 쪼가리 티켓이 합쳐지니 그야말로 왕짜증의 하모니.

영화는....정말이지 저런 타이틀 달고 개봉했다는 게 송구스러울 정도로 괜찮았다. 원래 우디 앨런 영화가 좀 현학적이거나, 특수한 계층에만 어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우디 앨런 특유의 모던한 연출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또한 재미까지 있다. 내가 본 우디 앨런 영화 중엔 단연 최고.

좀 쌩뚱맞지만 DMC 보면 네기시가 아멜리에나 카히미 카리에 등등 추종하면서 세련됨을 꿈꾸는데, 딱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가 그런 세련의 극치에 위치해 있달까. 배우들 다 빛나 주시고, 바르셀로나를 필두로 한 가우디 건축물 등 스페인의 풍광 멋지고, 대사 센스도 좋고, 특히 결말부가 굉장히 깔끔하다. 사실 러닝타임은 그리 길지 않은데,(100분 채 안 되는) 얘기가 도저히 결말날 분위기가 아니라 대체 어찌 끝내려나 싶었는데 총기오발이라는 굉장히 과격하면서도 단순한, 또한 물리적으로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연출은 대단히 멋진 선택이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랑 페넬로페 크루즈는 역시 커플이라 그런지 티격태격하는 게 아주 그냥 실감나고 박진감 쩔더라. 페넬로페 크루즈는 각종 영화제 여우조연상 휩쓴 게 확실히 납득이 가는 파워 넘치는 연기. 스칼렛 요한슨은 상대적으로 연기 쪽은 그냥 밋밋한데, 뭐 이 처자는 그냥 스크린에 나오는 것만으로 예술이니. 진짜 어찌 저런 마스크에 저런 프로포션까지.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음 그러고 보니 바르뎀이 작년에 노나없으로 아카데미 조연상 먹었는데 올해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어서 먹었네. 첫 스패니쉬 수상자 어쩌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페넬로페 크루즈가 두 번째 스패니쉬 수상자인 건가.

정작 비키..이면서도 전단엔 얼굴도 못 비친 레베카 홀 양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얼마전에 봤던 프로스트 대 닉슨에서 프로스트 여친으로 나왔던 아낙이 아닌가. 근데 프로스트/닉슨에선 꽤 이쁘게 나왔었는데 여기선 그냥 수수하더라. 뭐 배역 자체가 그런 캐릭터라 그렇게 꾸미긴 했겠지만.

16일 개봉이니 아직 좀 한참 남긴 했지만, 영화 정말 괜찮다. 음악도 좋고, 상기 언급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고 세련스럽다. 군더더기 같은 거 전혀 없음. 굳이 흠을 잡자면 좀 과도한 나레이션인데, 이건 뭐 내가 원래 나레이션을 안 좋아해서 그런 거고,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음 근데 자막이 여러모로 좀 병맛이긴 하다. 이 깔끔하고 세련스러운 영화에 자막은 마리 앙트와네트 자막(..보단 약간 낫지만) 수준의 찌질한 어휘들이 판치니. 에효 제목이랑 자막이 아주 그냥 쌍으로 말아먹는구나.

우디 앨런 영화에 거부감 좀 있는 사람들도, 선입견만 버리면 재미나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 아 그리고 노파심에 부연하자면 제목이나 카피는 저 모양 저 꼴이지만 전혀 자극적인 영화는 아니니, 오히려 그런 거 기대하고 가는 사람들은 파닥파닥 낚이는 거다.

..근데 어째 역시나 번 애프터 리딩 마냥 보고 나서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영화 이상하다고 궁시렁궁시렁거리더라.-_-a

이런 정식개봉전 시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관객들 반응이 거의 흥행 성적으로 이어지는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아마도 관객 많이 들진 않을 것 같고 길어야 2주 버티려나 싶다.

뭐 암튼간에....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비키 바르셀로나 크리스티나가 슬럼독 밀리어네어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좋았다. 그저 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만 좀 어떻게 바꿔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곧 개봉할 엑스멘 오리진스 울버린이나 5월 개봉 예정인 천사와 악마 정도가 기대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09년 상반기 영화 중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가 그랜 토리노와 더불어 최고의 작품으로 남을 듯 하다. DVD 나오면 사야지.


슬럼독 밀리어네어 보고 생각보다 너무 별로라, 속은 기분에 분을 삭이기 힘들었는데, 그래도 번 애프터 리딩에 비.크.바까지 둘 다 무지 괜찮아서 싹 풀렸다.


P.S>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둘이 하면 로맨틱 하고 셋이면 환상적...일까?' 생각해 낸 작자는 년인지 놈인지 모르겠으나 X잡고 반성해라 진짜. 저게 뭐냐 도대체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입이 심심하네 된장. 로맨틱 하고에서 띄어쓰기는 또 왜 한 건지 원....초딩도 저렇게 띄어쓰진 않겠네.

by Lucier | 2009/04/07 23:02 | Movi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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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wer23 at 2009/04/09 00:13
이젠 이해가 좀 가니까 한 번 더 봐야징~~
Commented by Lucier at 2009/04/09 11:17
전부 내렸던데, 재주껏 보시길. 이대 안에 모모 정도 남은 것 같긴 하네요.
Commented by 복숭아 at 2009/04/09 12:54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ㅎㅎ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보셨나요??

요거 막내리기 전에 극장에서 보고싶은데요 ㅎㅎ

이곳은 저의 영화에 대한 궁금함을 해결하는 장소입니다 (응?)
Commented by Lucier at 2009/04/09 13:51
더 폴 두 번 봤는데, 한마디로 영상은 S+++급이나 재미는 C급이랄까요. 부제로 붙은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 아주 죽이죠. 무슨 초딩 영화를 만들어 놨어(...)
내린 지는 사실 벌써 몇 달 지났는데 요즘에 쌩뚱맞게 CGV 쪽에서 다시 트는 것 같더군요.

찾아보니 제가 예전에 짤막하게 포스팅해둔 것도 있으니 허접하나마 참조해 보셔도 괜찮을 듯.

http://lucier.egloos.com/186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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